
비자림에서 느낀 첫 숨결
제주에 가면 바다를 떠올리기 쉽지만, 비자림을 처음 걸었을 때는 그보다 더 깊은 감정이 들었다.
먼저 입구에 서서 비자나무의 향기를 맡았는데, 마치 오래된 책장처럼 낡고도 아늑한 기분이었다.
그 곳에서 산책을 시작하면 바람과 새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한 줄기 빛이 숲길을 가로질렀다.
나는 이 순간이 영화 속 장면 같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비자림은 그 자체가 자연의 숨결이며, 한 걸음씩 나갈 때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정리되는 듯했다.
비자나무와 비자림의 역사
제주 동쪽 평대에 자리한 이 숲에는 약 3천개의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통적으로 마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된 씨앗이 뿌리를 내려 현재의 아름다운 정원을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비자는 오랫동안 약재로 쓰여 왔기에 숲은 자연 그대로 잘 보존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자림은 세계적으로도 규모가 크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 결과 제주와 한국의 국가유산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비자림 산책코스: 두 개의 길
이 숲에는 A코스와 B코스로 나뉘어 있어, 첫 번째 코스를 따라 걷기만 해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A코스는 화산송이와 데크가 조성돼 유모차나 휠체어로도 편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비자나무 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새들의 지저귐이 울려 퍼진다.
바스락거리는 화산송이를 밟으며 가면, 숨이 차오르지 않으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B코스를 걷고 싶다면 좀 더 긴 거리를 준비하고, 숲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을 오래도록 즐겨보자.
비자림 주변의 맛집: 함덕연옥
숲길을 다녀서 몸이 가벼워지면 바로 근처에 있는 함덕 연옥으로 향한다.
여기서는 한 그릇 요리가 인기가 많다. 전복솥밥, 흑돼지 솥밥, 갈치조림 같은 메뉴가 있다.
전복이 듬뿍 들어간 솥밥은 버터향과 내장이 어우러져 풍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또한 섞어조림은 고등어나 갈치를 함께 넣어 만든 메뉴로, 맵지 않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음식이 끝난 뒤에는 함덕 해수욕장의 탁 트인 뷰를 바라보며 식사를 마무리한다.
비자림과 함덕 연옥의 조화
숲에서 느꼈던 고요함을 바다로 이어가는 이 여정은, 여행 중 가장 큰 힐링이 되었다.
비자나무가 우거진 숲길 뒤에 펼쳐지는 파란 바다는 서로 다른 매력을 동시에 품고 있다.
연옥에서 먹는 따뜻한 한 그릇과 함덕의 시원한 물결은 여행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면, 숲길 걷기와 해변 놀이를 번갈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맛과 경치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드물다.
비자림을 다시 찾고 싶은 이유
나는 비자림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때마다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한밤중의 숲속, 별빛이 반짝이는 나무 사이를 걷던 때였다.
그곳에서 느낀 평온함과 비자나무의 따뜻한 포근함은 언제나 내 마음을 녹인다.
다음 여행에서는 꼭 다시 찾아와 숲길 한가운데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비자림이 주는 자연의 품격과 함덕 연옥에서 느낀 풍미를 함께 체험하면, 그야말로 제주 여행 완전 정복이다.